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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기념관에 다녀와서

이민재님 2014. 11. 3. 16:23




세종성왕님의 위로

이번 학기는 나의 대학생활 중에서 가장 여유로운 학기인 것 같다. 어제도 역시나 일찌감치 오후수업이 끝나서 학교 앞에서 버스를 타고 세종대왕기념관으로 출발했다. 느낌이 조금은 이상했다. 혼자 돌아다니기는 좋아하지만, 목적지가 지루할 것만 같은 세종대왕기념관이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가면 역사책처럼 글씨들이 빼곡히 쓰여있겠지?’ 그걸 다 읽는 것은 나에게 참으로 고역이다. 늘 그래왔다. 역사를 잘 모르고, 사실 관심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가는 여정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 노력했다. 가서 막상 내가 느끼고 쓸 말이 별로 없을 것 같아서였다. 버스 타고 복잡하디 복잡한 종로를 지나 고려대 앞에 내렸다. 나는 버스에서 내려서 스마트폰을 켜고 위치를 확인한 후 천천히 걸어갔다. 가는 길은 상당히 복잡한 골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 많이 계시고, 빌라들이 빼곡히 들어서있는 그런 동네였다. 걸어가는 여정은 전혀 세종대왕기념관이 나올 것 같지 않은 그런 길들의 연속이었다. 걸어가는 내내 불안했다. 스마트폰은 옳게 가고 있다고 말해주는데, 가는 내내 불안했다. 마치 나의 인생길 같았다. 10여분 걷고, 골목이 끝나면서 횡단보도 맞은편에 세종대왕기념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안도를 하며 들어섰다.

 마음을 다잡고 천천히 세종대왕기념관을 둘러보았다. 업적이 다양한 분야에서 많으시다 보니 업적의 유형으로 분류하여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처음에 딱 들어서면 한글실에 입장하게 되는데, 문득 한글이 매우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붓글씨로 또박또박 빼곡하게 쓰여있는 글씨들이 정갈하고 멋지게 보였다. 물론 무슨 말인지는 몰랐다. 일대기실, 국악실, 과학실을 보면서 나는 세종성왕님이 리더로써 어떤 분이셨을지 상상해보았다. 정말 한 사람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으시고 조예가 깊으셨던 분이셨던 것 같다. 음악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박연을 지도하시는 모습, 장영실을 곁에 두고 여러 발명품들을 만들도록 독려하신 모습, 군사훈련을 지도하시는 모습, 궁 내에 불당을 건립하시는 모습, 집현전 학자들을 독려하시는 모습을 떠올려 볼 수 있었다. 세종성왕님은 지금 각 계 장관들이 하고 있는 모든 일을 혼자 하고 계셨던 것 같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심도 있게 헤아리고 계셨던 것이다.

한 명의 리더로써 세종성왕님을 살펴보면, 그 분께서는 제너럴리스트셨던 것 같다. 21세기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현대사회는 전문성을 강조하고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래서 다양한 분야를 두루두루 알고 있는 사람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생긴 것 같다. 하지만 세종대왕님을 접하면서, 리더는 모든 분야를 헤아릴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나를 위로하고 싶었다. 나로 비추어 보건대, 나는 분명한 제너럴리스트이기 때문이다. 나쁘게 말하면, 스페셜한 것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나는 이번 기회로 나의 리더로서의 가능성을 세종대왕님 안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나는 또한 세종대왕님의 신념과 뚝심에 감탄했다. 세종대왕님은 그 당시 신하들의 반대를 무릎 쓰고 궁 내 불당을 건립하고, 과거시험에 승과를 두는 등 억압정책을 완화하려고 노력하셨다. 세종대왕님은 모두가 아니라고 할 때 자신의 뜻을 관철하고 행할 수 있는 리더였다. 나는 나의 뜻을 관철하는 것은 둘째치고, 제대로 된 신념과 철학이라도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반성해본다.

최근에 나는 많은 교수님들과 대학원 진학 관련한 면담을 하며 낙담하는 경험을 했다. 로봇분야 쪽으로 교수님들을 만나 뵈었는데, 로봇 쪽으로 스페셜한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었다. 그래서 교수님들 중 상당히 많은 분들이 받아주기 힘들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건 맞는 말이다. 나는 그 어떠한 로봇관련 수상실적도 없다. 하지만 나는 내게 주어진 4년의 대학생활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고 자부한다. 누구보다도 많은 여행을 다녀오고, 음악도 심도 있게 했었다. 물론 전공공부도 충실히 하여 나쁘지 않은 학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대학원 진학에 전혀 가산점을 받을 수 없었다. 심지어 어떤 교수님은, 내가 이런 장점이 있다는 말을 하니까 오히려 안 좋게 보셨다. 전공과 전혀 관련 없는 경험을 나열하고 있으니 교수님 입장에서는 답답하셨던 것 같다. 이런 것들을 겪으며 나는 자존감이 많이 낮아져있었다. ‘내가 남들보다 부족하게 살아온 것일까?’ 라는 생각이 머리에 맴돌았다. 그러나 세종대왕님을 보면서 나도 잘 하고 있는 거구나라는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위로만 받고 멈추고 싶지는 않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은 내 자신을 위로함과 동시에 게으르게 살지 않고 로봇에 대한 전문성을 확보해야겠다는 결심도 했다. 세종대왕님이 음악전문가였던 박연의 실수를 지적할 수 있었던 것처럼 나도 특정 분야에서는 남다른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는 비장한 결심을 했다.

결과를 말하자면, 결국엔 나와 코드가 맞는 교수님을 만나서 원하는 연구를 할 수 있게 연구실이 배정되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운이라는 것이 내 인생에 작용한 적이 별로 없었는데, 이번에 원하는 연구실로 배정된 것은 운이 많이 작용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곳에서 내가 원하는 연구를 하고 전문성을 키워서 나의 제너럴리스트 역량을 펼칠 수 있는 무대에 서는 그 날은 간절히 바라보고 있다. 나도 세종대왕님처럼 창의적이고 멋진 연구자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답사는 차분하게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세종대왕님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나의 지난 4년간의 학부생활을 돌아보고 나를 토닥토닥 해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버스를 타고 창 밖을 보며 조금은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내가 그래도 열심히 살아왔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훌륭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종대왕기념관을 다녀오며 나의 롤모델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