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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에 쓰는 자서전

이민재님 2014. 12. 16. 16:00



나는 로봇공학자로서 출세한 삶을 살았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전 세계는 로봇의 열풍이 불었다. 그 당시 수많은 미래를 예측하는 연구소에서 로봇산업을 가장 뜨는 산업으로 분류하였다. 나는 꼭 그런 이유 때문에 이 분야를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우연찮게 이 분야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초창기였기 때문에 로봇제어에 대한 패러다임이 정립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나는 이때 인간모방형 로봇을 성공적으로 만들게 되었고, 나의 제어이론이 로봇산업의 패러다임이 되었다. 이를 통해 KoreaDynamics를 설립하여 세계적으로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젊은 시절부터 나의 삶의 목표는 사회적 성공이었다. 사회적으로 출세하면 행복할 것이다라고 맹목적으로 믿지는 않았지만,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지위에 오르고, 막대한 부를 축적해보는 것은 나의 꿈이자 소망이었다. 결국 나의 나이 40이 되는 해에 타임지의 올해의 인물로 선정될 만큼의 성공을 거두고 로봇시장을 주도하는 회사를 설립함으로써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 이 과정 속에서 나의 인간모방형 로봇들은 안 좋은 목적에 활용될 위기도 있었다. 세계 제 3차 대전이 일어날만한 순간이 있었다. 실제로 세계 여러 나라들로부터 로봇들로 이루어진 군대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 회사가 전세계 로봇산업을 주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 것의 위험성을 정확히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전투형 로봇 생산을 막기 위한 대책을 고심했다. 처음으로는 세계로봇윤리협회를 만들어 이 위험성에 대해 전 세계에 알리기 시작했다. 그 후 SF소설작가인 아이작 아시모프가 자신의 소설에서 주창했던 로봇의 3원칙을 프로그래밍하여 모든 로봇에 삽입하면 세계대전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봇의 3원칙이란 로봇이 인간을 해칠 수 없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로봇의 3원칙을 연구하여, 이를 완벽히 프로그래밍하는데 성공했다. 전세계 로봇에 그 프로그램을 삽입하게 하는 세계법률을 제정하고 제 3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결국 전투형 로봇생산이 불가능해지면서 세계 제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것을 막는 데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30대에 급작스럽게 나의 환경은 바뀌었다. 세계 최고의 로봇연구소라고 할 수 있는 MIT 미디어 랩에 있을 때만 해도 내가 세계적으로 이렇게 유명인사가 되고, 21세기의 빌 게이츠가 될 줄은 몰랐다. 갑자기 이런 막대한 부를 갖게 되면서 많은 유혹들이 있었다. 권력에 대한 욕심, 더욱 더 큰 재산을 쌓고 싶은 욕심이 나를 유혹했다. 그래서 사실 대한민국 국방부에서 천문학적인 금액을 제시하며 전투형 로봇의 대량생산을 주문했을 때 나는 많이 흔들렸다. 하지만 어렸을 적부터 키워왔던 나의 과학관, 세계관 덕에 이런 유혹을 뿌리칠 수 있었다. 전쟁은 비극이다. 내가 전투형 로봇을 개발하지 않았을 경우, 우리나라가 위험에 처하는 상황이었다면 나는 주저 없이 로봇을 개발하고 대량생산을 해서 우리나라의 국방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내가 그들을 해치지 않으면 그들이 나를 해친다는 사실이 명확해졌을 경우 나는 주저 없이 그들을 해칠 준비가 되어있다. 나에게는 세상 60억 인구보다 우리 4명의 가족이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30년은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내가 유혹을 이겨낸다면 로봇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그렇기 때문에 최소한의 비전투형 방어형 로봇만을 생산하고, 로봇의 3원칙의 세계법률제정을 주창하면서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것을 막으려고 노력했다. 나의 노력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지금은 어떠한 전쟁도 없는 평화로운 지구라서 너무 행복하다.

회사를 세계 최고의 로봇회사로 설립하고, 전 세계의 로봇들의 전투적 위험성을 제거하는 로봇의 3원칙을 완벽하게 프로그래밍을 하고 나니, 나는 더 이상 로봇산업에서 하고 싶은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2050년에 예전부터 아내와 꿈꾸던 세계여행을 시작했다. 또한 내가 벌어들인 막대한 부를 환원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었다. 이 것은 내 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차에 후진국 몇 군데를 돌아다녔고, 나의 부를 사용할 곳이 어딘지 깨달았다. 여행을 해보니 지나치게 자본이 불평등하게 분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후진국 국민들을 교육하고, 기본적인 의식주를 보장해주기 위해 많은 단체를 설립하고 지원하였다. 결국 지금은 2014년 지구에 비해 자본의 격차가 현격하게 줄어들어서 정말 기쁘다. 적어도 지금은 지구에 굶어서 죽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찾을 수가 없어서 너무 행복하다.

나는 젊었을 때부터 가정의 행복과 사회에서의 성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보통 사람들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나는 예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일도 잘하면서 가정에서도 최고의 남편, 아버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회사를 설립하고 키우면서, 그리고 로봇의 3원칙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이로 인해 아내와 소원해진 적이 있었다. 절대적으로 보내는 시간은 줄었지만 나는 매일 조금씩이라도 아내와 대화를 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막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고, 대의를 위해서는 이 일을 꼭 내가 해내야만 한다고 아내에게 설명했다. 아내는 많이 섭섭해 했지만 나를 끝까지 믿고 기다려주었다. 이러한 믿음 덕분에 나는 조금 더 수월하게 회사를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물러날 수 있었던 것 같다. 미안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의 이러한 발상은 조금 위험한 것이었고, 나는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성공의 기약이 없는 상황에서 나를 믿고 기다려주는 아내가 있었다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었던 것이고, 이런 성공을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은 채 이뤄낼 수 있었던 것 역시 운이 많이 따랐다. 나는 혹시 이 책을 읽는 독자가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당장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라는 조언을 해주고 싶다. 어쨌든 나는 이러한 고마움과 미안함 때문에 2050년부터는 아내의 말을 전적으로 따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아내 덕분에 제 2의 인생을 살기 시작했고, 일에서의 성공과는 다른 차원의 행복을 맛보고 있다. 그래서 수많은 인터뷰 공식질문인 당신은 세계 최고의 부자순위에서 계속 밀려나고 있는데 기분이 어떠십니까?”라는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의 일에 몰두했던 지난 날을 사랑하지만, 지금은 또 다른 행복의 세계를 경험하고 있다.”

나의 말처럼 나는 나의 모든 순간을 사랑한다. 젊었을 적 사회적 성공을 위해 물불을 안 가리고 달렸다. 이 것이 지금의 내가 보았을 때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그 시절의 나를 사랑한다. 또한 지금 봉사를 하고, 세계를 여행하고 있는 나는 젊은 시절의 나의 관점에서는 상당히 한심한 사람으로 생각될 테지만, 나는 지금의 나도 사랑한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며 삶의 목표, 행복의 기준이 바뀌기 마련이다. 가장 중요한 것을 잊지만 않는다면 그 어떤 것을 하더라도 괜찮을 것이다. 나는 당분간은 아내와 함께 봉사와 여행을 하며 살아가겠지만, 또 다른 것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면 또 해볼 것이다. 다만 가장 중요한 가치, ‘인간을 이롭게 하라라는 단군의 홍익인간 정신만 잊지 않으면 될 것 같다. 나는 홍익인간 정신에 한가지의 문장을 더 추가하고 싶다.

나와 우리 가족을 이롭게 하는 동시에 인간을 이롭게 하라